헤밍웨이의 자살

작성일:2024.01.09|조회수:0

헤밍웨이의 자살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러하듯 우리 부모님도 내가 어렸을 때 여러 위인전을 사서 책꽂이에 구비해두셨다. 정말 어렸을 때는 만화로 된 위인전이었고, 조금 컸을 때는 줄글에 삽화가 자주 나오는 위인전이었다. 양쪽 모두에 헤밍웨이가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그의 말년 행보를 자세히 조명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 존재는 그 무엇과도 다르게 느껴졌다. 중고등학생이 되어 문학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고 깝치던 시절에는 김훈과 함께 헤밍웨이의 저작을 많이 읽었고, 그의 문학 세계 전반에 흐르는 강렬한 남성성과 함께 나는 늘 그의 최후를 생각했다. 이해해보고 싶었다.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할 때면 하루이틀 정도는 온나라의 신문과 뉴스와 유튜브 영상이 그 이야기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이선균 씨의 자살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다루는 유튜브 영상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무리 그래도 자살은 안 된다'는 식의 댓글이 달려있다.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이런 의견에 공감하는 듯하다. 모든 종류의 자살이 모든 방면으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별로 아쉽지 않게도 나는 이러한 의견에 공감하지 못한다.

나는 자살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의적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타의적 자살이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인생의 관성 뿐이다. 헤밍웨이는 평생에 걸쳐서 강인한 남성성을 추종했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히 그의 남성성도 함께 쇠락했다. 그의 노년은 그가 원하는 만큼 남성적이지 않을 공산이 컸다. 작가가 작품의 마무리를 결정하는 것처럼, 헤밍웨이는 그저 그의 인생이 그려낸 궤적이 필연적인 결말에 다다랐을 따름이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인생이 그려낸 궤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외부의 사건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이번 이선균 씨의 경우가 그러했고, 조금 더 돌아보자면 구하라 씨나 최진리 씨의 경우도 그러했다. 헤밍웨이와 같은 자살은 축하할만한 일은 아니더라도 슬퍼할 일도 아니지만, 이들처럼 심적으로 코너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슬프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떤 종류의 자살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며 인간으로써 마땅히 애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요컨데 헤밍웨이와 같은 종류의 자살이라면, 그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더 읽어보기

  • 2026.04.29

    필요한 사람들의 세상 - omocon 후기

    이전 잡생각인 <너만의 월남쌈을 싸> 와 맥락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꼭 가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장편과 단편 소설을 썼다. 하지만 5년 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써야 할 이야기가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완성된 형태…

  • 2026.04.23

    너만의 월남쌈을 싸

    이 포스트의 제목은 유튜브 영상 <너만의 월남쌈을 싸 - 아이네 INE>에서 따왔다. 4월 초부터 @ilokesto 네임스페이스에 속한 거의 모든 라이브러리를 리뉴얼 하고 있다. 이미 deprecated 처리는 끝났고, 새로운 기준 위에서 라이브러리의 구조를 재정의하는 단계를 거치고 있…

  • 2025.04.25

    더 좁은 타입의 유효성에 대하여

    사람이 무언가를 집중해서 바라보다 보면, 어느샌가 주변부가 흐려지고 가끔은 집중하고 있던 그 대상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처음엔 분명하게 인식되던 경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오히려 애써 무시했던 주변이 본질을 가릴 때도 있다. 잘 보려 애쓰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시야를 좁히는 순간이다.…

  • 2024.04.01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프로그래밍

    최근 몇 주 동안 프로그래머스에서 알고리즘 문제를 풀고있다. 하루에 몇 문제씩 풀다보니 어느새 레벨1 문제가 네다섯 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까지 다 풀면 레벨2로 넘어가야지 생각하고 있다. 코드잇 스프린트 기간 동안 알고리즘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때문에 처음에 문제를…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