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 다음날 <오펜하이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롭지는 않았지만(『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지 말 걸 그랬다),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물리학자의 인생을 그린 만큼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리처드 파인만이 등장하는 짧은 장면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파인만 테크닉'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원래 잡생각이라는 것은 다 이유 없이 불쑥 떠오르기 마련이다).
"간단히 설명 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테크닉을 한 줄로 설명한다면 **'이해하고 싶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절차'**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파인만 테크닉이 특수한 분야의 특정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데 늘 유효한 방법론이라는 뜻이다. 사람에 따라 많게는 여섯 단계에서 적게는 네 단계로 구분하던데,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실은 세 단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알고싶은 개념에 대해 모르는 것을 공부한다.
공부한 내용을 최대한 단순하게 서술한다.
서술한 내용 중 충분히 단순하지 않은 부분을 골라낸다.
충분히 단순하지 않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므로, 다시 1로 돌아가서 모르는 것에 대한 공부를 진행한다. 이렇게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알고 싶은 개념을 충분히 단순하게 서술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7살 짜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충분히 단순하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12살이 이해할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단순하다 생각할 것이다. 결국 이 '충분히 단순하다'는 것은 개개인이 해당 개념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해하고 싶은 가에 달려있다.
유튜브에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라고 검색하면 해당 내용을 담은 파인만의 영상 하나가 나온다. 해당 영상은 파인만 테크닉에 대한 궁극적인 해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어떤 개념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해하고 싶은지에 따라 단순화의 수준도 달라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면 남들보다 3배는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유행처럼 돌았던 적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고 이게 사실인지 딱히 찾아보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저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파인만 테크닉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가르칠 수록 상대가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한의 공부가 필요하다. 파인만 테크닉에서는 그저 3배라는 명시적인 목표 대신 그저 '될 때까지' 해야할 뿐이다.
고등학생 때는 흔히 **'설명하는 공부법'**이라 알려진 방식이 내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자진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은 문제집의 설명을 내용하면서 해당 개념을 재정리하고, 다른 친구들은 그 설명을 들으며 개념을 잡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생각해보면 이 공부법도 궁극적으로는 이타적으로 활용된 파인만 테크닉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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