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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좁은 회랑>

작성일: 2024.12.07

한국 사회와 <좁은 회랑>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9월 23일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여 10월 17일에 다 읽었다. 그 사이에 공저자 두 분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시게 되어, 나는 졸지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저작을 읽게된 꼴이 되었다. 누가 상 받았다고 책 찾아 읽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냥 재미있는 해프닝이다 싶었다. 이 책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적어도 12월 3일까지는 말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래드 다이아몬드는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요인과 지리적 조건이 인류 문명의 발전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농업, 가축화, 기술, 정치 조직의 발달이 특정 지역에서 더 유리하게 이루어진 이유를 설명하며, 이를 통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의 논리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가령 한국과 북한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이 두 나라의 오늘날이 이토록 극명하게 다른 이유를 환경적 요인과 지리적 조건 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좁은 회랑>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이러한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제도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사회의 발전과 쇠퇴를 결정짓는 데 있어 제도와 정치적 권력의 배분 방식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출현으로 만인의 투쟁이 억제되고 인간 개개인이 '목표'를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홉스는 리바이어던이 가진 속성을 단편적으로 기술했을 뿐이며, 만인의 투쟁이 억제된다고 사회가 반드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리바이어던에게는 여러 모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사회의 힘과 국가의 힘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리바이어던을 분류하고 있다.

좁은 회랑은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 등장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힘이 알맞은 균형을 이루는 공간이다. 국가의 힘이 더 강해지거나 사회의 힘이 더 강해지면 이 균형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리바이어던은 언제든 족쇄를 풀고서 독재적 리바이어던이나 부재하는 리바이어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좁은 회랑은 목적지라기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그리고 영원히 머물며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지난 2024년 12월 3일, 한국 사회는 이러한 균형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려는 시도와 맞닥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습적으로 계엄을 선포하며 국회를 봉쇄하였지만, 시민 사회의 힘이 이를 무력화 시켰다. 다행히도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오늘까지도 아직 한국 사회는 좁은 회랑 안에 있다.

앞으로도 내가 속한 사회가 좁은 회랑 안에 있을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시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